골프천국/골프관련정보

한국인의 골프내기 이야기

소호허브 용인소호오피스 비상주사무실 2011. 6. 9. 16:31


한국 골퍼들의 내기 골프 열풍은 유별나다.말레이시아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한국인들
 

이해찬 총리가 ‘부적절한 골프’로 결국 사퇴했다. 로비 의혹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내기골프’였다. 판돈이 얼마든 ‘내기’라는 말이 담고 있는 ‘불량성’ 때문이었다. 사실 내기골프는 어떤 골퍼라도 포기하기 쉽지 않은 ‘유혹’으로 통한다. 어떤 이는 “내기골프를 말리는 것은 골퍼에게는 숨을 쉬지 말라는 것과 매한가지”라고 말할 정도다. 도박과 내기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는 말도 비등하다. 물론 ‘작은 내기’에 국한해서다. 왜 우리는 ‘내기골프’에 열광하는 것일까?


■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단돈 1달러짜리 내기골프

■ 김형욱 전 안기부장의 열광적 ‘따블’ ‘따따블’ 돈 걸기

■ 가수 딘 마틴 100만 달러 신곡 레코드 취입권 베팅

■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내기골프에서 딴 1달러 지폐 수집광

----------------------------------------------------------------------------

"거액 내기골퍼들은 주말보다 평일에 와요. 저희 골프장에도 낯익은 얼굴이 있죠. 이분들 처음에는 10만 원 스트로크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50만 원, 60만 원까지 갑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1,200만 원을 쓸어 가는 것을 봤어요. 하지만 그것도 워밍업인 모양이에요. 밤에는 골프장 인근 식당으로 옮겨 다시 거액 포커판을 벌리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이쯤 되면 이것은 내기골퍼가 아니라 사기도박단이죠.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져도 골퍼 중에는 힘 있는 분들이 많아 골프장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큰 내깃돈이 왔다갔다 하면 그린은 어느 순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어요. 스윙 인터벌이 길어지고 퍼팅 시간을 끌면 경기 진행이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협조를 요청하다 쌍욕에 손찌검까지 당한 캐디들도 있어요. 돈 잃고 엉뚱한 데 화풀이하는 거죠. ‘그린이 왜 이래!’ ‘서비스가 깬다’ ‘언니들 이렇게 불친절하면 돼?’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퍼터를 꺾어 버리거나 그린을 찢는 일도 있어요. 피칭웨지로 그린을 마구 찍는 사람도 봤어요!”
국내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으로 일하는 두 명의 캐디가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골프를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에티켓과 룰이 있는 신사다운 스포츠라는 예찬론도 뒤따른다. 골프 경기만큼 에티켓이 강조되고 다양한 룰을 가진 스포츠도 드문 까닭이다. 내기골퍼들은 왜 승부 없는 골프게임을 밋밋하게 느끼는 것일까?
 

재미 배가, 신중한 플레이에서 출발

유명 골프 잡지 <골프다이제스트>가 2000년 세계 각국의 골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는 눈길을 끌 만하다. ‘친구들과 라운드할 때 적은 돈이라도 내기를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한국에서는 78%에 달했지만 일본에서는 59%, 미국 42%,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은 6∼7%에 그쳤다.
좋게 말하면 한국인 특유의 ‘승부욕’이 잘 나타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 한국 사람들은 내기 자체를 좋아한다. 고스톱 게임이 있는 게임 포털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때 해외여행 중 외국 공항에서도 화투판을 벌이던 것이 한국사람들이다.
국내 골프장치고 내기골프를 금지하는 경고문이 안 붙은 곳이 없고, 실제로 아마추어 자격규칙 1조12항에도 내기골프를 ‘골프를 해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골퍼들의 속내에는 내기골프는 포기하기 어려운 불문율이다. 갓 골프에 입문한 초심자든 노회한 싱글골퍼든 불문가지다.
국내 골퍼들의 그런 성향을 보여 주는 통계는 얼마든지 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가 2004년 자사 인터넷 회원 4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내기골프를 ‘아예 안 한다’는 회원은 1%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매번 한다’는 응답자가 25%, 9차례 17%, 8차례 18%, 7차례 17% 등으로 5차례 이상이 전체의 88%를 차지했다. 내기골프로 딴 돈의 용처에 대해서는 ‘캐디 피에 보탠다’(47%)는 응답에 이어 ‘식사나 술을 산다’(34%), ‘돌려준다’(15%)는 응답이 뒤를 따랐고 ‘주머니에 챙긴다’는 답은 3%에 그쳤다. 우선 대부분의 골퍼에 해당하는 내기골프의 순기능부터 들어 보자.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올림픽CC 사장을 지낸 K씨. 50대 중반의 그는 라운딩 횟수가 1,200회에 달하는 로핸디 싱글골퍼다. 그 또한 ‘내기골프’ 옹호론자다. 아들을 현역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골퍼로 키웠는데, 어릴 때부터 함께 라운딩하면서도 “일부러 내기를 붙여 승부근성을 키웠다”고 말할 정도다. “아들은 타수에서 아버지에게 밀리면 한 달 용돈이 줄어드는 까닭에 기를 쓰고 퍼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인들과 라운딩할 때도 똑같은 방법을 쓴다. 골프는 실수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스피릿 80%’의 게임이어서 동반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죽을 쑤면 스코어가 하향평준화되기 일쑤다. 이러한 느슨한 라운딩을 막아 주는 데 내기골프만 한 ‘명약’이 없다는 이야기다.
“적은 액수의 내기골프는 집중력을 키워 주고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게임 룰을 세워 줍니다. 우리나라 골퍼들이 워낙 ‘터치 플레이(룰에 어긋나게 공을 옮기는 행위. 손이나 발로 공을 옮기기 때문에 핸드웨지·풋웨지라고도 한다)’를 자주 하는데다 ‘기브(‘오케이’라고도 함)’ 주는 데 인색한 골퍼가 없잖아요? 평균 주말골퍼라면 아까운 휴일에 비싼 그린피를 들여 필드에 나오는데 스코어가 망가지면 얼마나 힘 빠지는 일입니까?”
그는 보통 1만 원짜리 스트로크를 즐겨 치는데, 돈을 따면 캐디피나 식사비로 지불하거나 기름값으로 멤버들에게 돌려주지만 2만 원은 꼭 남겨 챙겨 온단다.

"골프 하느라 집을 많이 비우니 아내에게 늘 미안하거든요. 골프 끝나고 저녁에 자장면 한 그릇 함께 먹고 영화 한 편 보는 여유가 있어요. 1년에 스무 번 정도는 영화 구경을 해요. 아내도 기대감 때문에 가방을 싸 주기도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골퍼들의 최종 목표는 ‘굿 스코어’다. 푹신한 잔디를 밟으며 자연을 벗삼아 친구들과 한담을 즐기는 것도 즐겁지만 스코어를 쉽게 양보할 바보는 없다.
KLPGA 투어 골퍼인 박모 씨는 “타당 1,000원짜리 스트로크도 없는 플레이를 하다 보면 마치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부담 없는 내기는 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골프의 재미를 배가시킨다는 이야기다. “프로 골퍼라도 상금 한 푼 없는 대회에 참여하고 싶겠느냐”는 말이다.
악착같은 부성애로 박세리를 LPGA 최고 골퍼로 키워 낸 박준철 씨도 어릴 때부터 딸에게 일부러 내기골프를 시켰다. 내기 상대들은 주로 아버지 친구들로, 담력과 집중력을 키워 주려는 의도였다. 스트로크 하나 하나에 엄청난 돈이 걸린 프로 게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배짱을 길러 주기 위해서였다.

박세리에 이어 LPGA에서 맹활약 중인 많은 골퍼에게 어린 시절 내기골프 경험은 공통분모에 가깝다.
골프 애호가로 소문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도 내기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장은 당시 고위층 인사들과 1주일에 꼭 한 차례 이상 ‘수요회’라는 모임을 가졌는데, 필드에 나설 때마다 내기를 즐겨했다. 타당 1,000원짜리 내기골프로, 라운드 후 스코어 카드를 보며 타수를 정산하는 식이었다.
골프의 묘미를 모르는 이로서는 3,000원을 딴 뒤 아이처럼 즐거워했다는 대기업 총수의 미소를 이해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이 회장의 내기골프에 대한 지론은 “대충 적당히 하는 골프가 아닌 플레이의 묘미를 돋우면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골프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기골프의 순기능을 말한 것이다.
한국 골퍼들의 내기 골프 열풍은 유별나다.말레이시아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한국인들.(위 사진은 내기골프와 무관함)
“내기골프가 내 본업”이라고 외쳤던 유명배우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오늘날 미국 골프산업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을 듣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걸프전 와중에도 골프를 즐겼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푼돈이라도 꼭 내기를 걸었던 골퍼들로 유명하다.
특히 재임 중 무려 800여 차례 라운딩했을 정도로 골프 마니아였던 아이젠하워는 집무실에서 골프화를 신고 다녀 백악관 마루에 수많은 골프화 자국을 만들어 낸 위인으로, 현재 백악관에는 그가 남긴 언더파(Under par) 스코어 카드가 전시돼 있다고 한다.
그런 아이젠하워는 내기골프에서 딴 1달러짜리 지폐를 모으는 별난 취미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수이자 코미디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가졌던 딘 마틴(Dean Martin)은 스스로 “내기골프가 내 본업”이라고 외치고 다닌 사람이다. 그는 한때 내기골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자신의 100만 달러짜리 신곡 레코드 취입 권리마저 베팅해 상대방의 기를 질리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마스터스 3승과 PGA 투어 82승에 빛나는 ‘영원한 챔피언’ 샘 스니드(Samuel Snead)는 “나는 한 번도 카지노에서 노름을 해 본 적이 없지만 골프 라운드에서는 한 번이라도 돈이 오가지 않는 적이 없다”며 내기를 도박과 구분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미국골프협회(USGA)는 “내기골프라 하더라도 도박성이 없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 개인 간의 친목이라면 비록 골프 룰에 위배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내기골프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미스터 스킨스’로 불리는 PGA 프로 프레드 커플스는 “단돈 1달러 내기게임이든 100만 달러가 걸린 시합이든 부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내기골프의 효과에 대해 언급했다. 골프의 승부근성을 불러일으키는 데 내기만 한 자극이 없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내기골프의 역기능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내기골프가 골프 스코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본질적 회의론부터 있다. 국내에서 인정받는 티칭프로 L씨(44)의 설명.
“골프라는 스포츠의 가장 큰 묘미는 본래 챌린지(도전성)예요. 그런데 내기골프는 집중력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골프 본연의 역동적 재미를 반감시키거든요. 돈에 집착하면 스윙이 위축되고 또박또박 치는 수동적 골프를 하게 됩니다. 특히 초보 골퍼는 내기가 걸리면 본래 스윙감을 잃어버리기 일쑤인데, 나중에는 상체와 팔로만 스윙을 해 골프 실력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요.”
더구나 그는 “골프에서 난해한 코스를 공략하는 모험심이 없다면 무슨 재미냐”고 말한다. 게다가 골프의 기본은 “남을 배려하는 운동이어서 상대방의 뛰어난 플레이에는 기분 좋게 ‘굿 샷’을 외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기가 걸리면 신사적인 골프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수 하나로 성패가 갈리는 내기골프에서 “과연 상대 골퍼의 ‘OB(Out of bounce)샷’을 안타까워하고 ‘굿 샷’에 진심 어린 박수를 쳐 줄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했다.
PGA 클래스A 출신 티칭프로 J씨(39)는 “한국에 와서 국내 골퍼들이 내기골프를 좋아하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나한테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이 1만 원짜리 스트로크를 제안해 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10센트, 25센트짜리 스트로크가 흔하고, 돈이 좀 있다 하더라도 1달러, 5달러짜리 매치 플레이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내깃돈이나 승패에 집착하면 스코어뿐만 아니라 골퍼 자신의 체면에도 큰 손상이 가게 마련이다. 돈 잃고 속 좋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 PGA와 LPGA에서 소문난 내기골퍼로 꼽히는 필 미켈슨 · 로라 데이비스 · 비제이 상(위 부터).비제이 싱은 특히 생활이 어렵던 시절 내기골프로 생계를 잇기도 했다고 한다.


김형욱은 국내 내기골프의 원조?
골프라는 운동이 그렇지만, 내기골프는 상대방의 성격과 심성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과 같다. 그 사람의 인간성과 인생관이 가감 없이 노출되는 것이 골프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분별 없는 내기골프는 유쾌한 골프를 부담스럽고 짜증스럽게 만든다.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에서 자칫 의리가 상해 친구를 잃게 하는 ‘양날의 칼’이 내기골프인 것이다.
2003년에는 10여 차례에 걸쳐 10억 원대의 내기골프를 한 A그룹 P회장이 상습 도박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주로 하도급업자와 납품업자 등 경제적 약자들을 상대로 눈에 안 보이는 져주기 골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골프도박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도박골프 대형사건들의 대부분도 거액을 잃은 동반골퍼의 폭로가 수사의 출발점이었다.
포커 게임에는 좋은 패를 쥐고도 베팅을 적게 해 상대를 안심시키다 막판에 왕창 거금을 쏟아 넣는 ‘샌드 배깅’이라는 용어가 있다. 골프명언 중에도 “진짜 골퍼는 두 개의 핸디캡을 갖는다. 자랑하기 위한 것과 내기골프 때 쓰는 핸디캡”이라는 말이 있지만, 필드에서도 내기가 걸리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핸디를 속이는 이들을 골프에서는 ‘샌드 배거(Sand bagger : 가죽주머니에 모래를 채운 블랙잭을 흉기로 가지고 다니는 마피아)’라고 한다.
경기도 포천의 A골프장 경기팀장을 맡고 있는 김모(42) 씨의 말.
“고액 내기골퍼들은 처음에는 타당 10만 원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50만 원 이상으로까지 올려요. ‘따블’ ‘따따블’을 계속 외치다 결국 판돈이 수천만 원까지 올라가는 식이죠. 이 사람들은 개임 중에는 캐디가 모르게 1원, 5원 이렇게 부르고 라운딩을 끝낸 뒤 클럽하우스로 돌아와 따로 정산합니다. 한번은 클럽하우스 식당 테이블 위에 1만원권과 수표를 수북이 쌓아 놓고 돈을 나누는 광경을 보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명문 골프장일수록 이런 짓을 용서하지 않죠.”
내기골프로 몸이 달아오르게 해 저녁때는 거액 포커 도박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는 “우리 골프장에서도 몇년 전 전문 도박단인 ‘꽃뱀’들이 남자골퍼를 끌어들여 처음에는 골프에서 돈을 잃어 주다 나중에 포커판에서 수억 원을 챙겨 구속된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기골프가 단순한 오락의 수준을 넘어 사기범죄의 한 방편으로까지 활용되는 셈이다.
이렇게 내기골프 이야기가 나오면 꼭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3공 때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 씨다.
그는 한국프로골프협회를 탄생시킨 산파역으로 골프광 중의 골프광으로 꼽힌다. 골프를 배울 때 프로의 거듭되는 “어깨에 힘 좀 빼십시오”라는 말을 못 참아 “네가 뭔데 빼라 마라 하느냐”며 골프채를 휘둘러 얼굴에 수십 바늘의 상처를 낸 장본인이다.
괴팍한 성격에 욕심이 많아 그는 내기골프와 관련해서도 무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그에게는 취미골프는 없고 오직 내기골프만 있었다. 그런데도 한 번도 지는 경우가 없었다. 그의 우격다짐 골프에 주변에서는 “김형욱을 이길 만한 선수는 각하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최근 한 잡지에서 김형욱의 골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따따’ 골프의 원조가 바로 김형욱이야. 그가 쌍용그룹 창업자인 김성곤 씨나 신진자동차 김창원 사장 등과 몰려다니며 지독하게 내기골프를 쳤지. 액수도 컸어. 김형욱이는 내기를 하다 지면 ‘따’와 ‘따따’를 마구 불렀지. 그래도 돈을 계속 잃으면 마지막 9홀에서는 ‘프레스’를 불러요.
자기가 이기면 그때까지 잃은 돈을 모두 회수하고, 지면 돈을 두 배로 내야 하지. 별짓을 해도 안 되면 15, 16홀쯤 돼서 비서가 달려와 쪽지를 하나 건넵니다. 그걸 읽는 시늉을 한 뒤 ‘지금 청와대에서 오라고 그럽니다. 미안하지만 가 봐야겠소’라면서 중간에 도망쳐 버려. 오죽했으면 ‘김형욱이한테 돈 안 잃은 사람 없고, 김형욱이에게 돈 따 본 사람 없다’는 말이 나왔겠어?”
2001년 5월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 등 여 3당 수뇌부가 참가한 골프회동은 여론의 내기골프 시비에 휘말렸다.하지만 골프에 관한 한 마이웨이를 외쳤던 JP는 며칠 뒤에도 LPGA 스타 골퍼 박세리 선수와 라운딩해 언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1달러 내기
전성기 때 2언더 기록을 갖고 있는 JP도 내기골프에 대해 인색하지 않다. 그는 지금도 ‘게임에 약간의 긴장을 갖기 위해’ 홀당 1만 원 정도를 건다고 한다. 큰돈을 걸고 내기골프를 하는 것은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짓이어서 삼간다는 것이다.
“내기를 하면 서로 반칙을 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하지. 그것을 안 할 때는 한 번 더 치라고도 해요. 우리 나이쯤 되면 엄격하게 룰을 따지기보다 유쾌하게 치는 것이 중요해. 내기를 해도 파 3홀에서나 하지.”
골프에 관한 한 ‘마이웨이’를 외쳐 왔던 그는 언론의 숱한 공격에도 골프를 고집했다.
경기도 광주의 I골프장 관계자는 국내 골퍼들의 평균 내기골프를 이렇게 분석했다.
“십중팔구는 내기골프를 해요. 싱글 골퍼들은 주로 스트로크를 하지만 실력이 엇비슷하지 않으면 분란의 소지도 있어요. 그래서 중급자들은 부담 없이 홀마다 상금을 빼먹는 ‘스킨스’를 많이 합니다. 홀마다 1등과 꼴찌, 2등과 3등이 한 편이 되어 하는 ‘라스베가스’ 게임도 많이 하는데, 최근에는 한 사람에게 돈을 몰아 주는 ‘조폭’ 골프가 등장했어요. 스트로크 게임에서는 기업 부장급들이 3,000∼5,000원, 임원들이 5,000∼1만 원, 사장급이 1만∼2만 원짜리를 많이 치더군요. 스킨스는 보통 참가자들이 타수별로 갹출해 20만 원 혹은 40만 원을 만들어 홀마다 상금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골프의 재미를 높이고 스코어를 줄이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내기골프관은 과연 옳은 것일까? 그 답에 GE의 CEO를 지낸 잭 웰치의 사례가 참고가 됐으면 한다. “CEO 말고는 프로 골퍼가 가장 하고 싶었다”고 고백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라운딩 이야기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의 골프였다.
그는 이날 첫 홀 그린에서 워런 버핏이 파 퍼팅을 놓치자 빌 게이츠가 “오늘 매치는 끝났다”고 말해 어리둥절해 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빌은 “오늘 워런과 둘이 파를 먼저 기록한 사람이 1달러를 주는 내기를 했다”고 말했다. 둘 다 전반홀을 돌 때까지 파를 못하면 타수가 적은 사람이 1달러를 가져가기로 했다.
세계 최고 갑부들의 내깃돈은 단돈 1달러였다.